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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일본의 문화를 정리한 문서이다.
2. 식문화 [편집]
2.1. 식사 도구 [편집]
일본에서는 식사 시에 젓가락이 주로 사용되는데, 이는 식기 발달에 큰 영향을 주어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접시가 발달하는 결과에 영향을 주었다. 특히 에도 시대에 음식이 발전함과 동시에 식기도 크게 발전했으며, 에도 시대에 사용되던 식기는 21세기에 사용되는 식기와 형태가 유사하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과 서양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서양의 식기도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일본의 식기에는 계절감이 반영된 경우가 많다. 이와 함께 그릇과 음식 사이의 미적 균형이 중요시되는 편이다. 또한 그릇은 한 손으로 들고 먹는 편이다.
일본에서는 식사를 할 때 숟가락이 자주 사용되지 않고, 대신 젓가락이 거의 항상 사용된다. 이에 따라 젓가락에 관한 예절도 있다. 다음의 젓가락질은 예의에 어긋난다.
일본의 식기에는 계절감이 반영된 경우가 많다. 이와 함께 그릇과 음식 사이의 미적 균형이 중요시되는 편이다. 또한 그릇은 한 손으로 들고 먹는 편이다.
일본에서는 식사를 할 때 숟가락이 자주 사용되지 않고, 대신 젓가락이 거의 항상 사용된다. 이에 따라 젓가락에 관한 예절도 있다. 다음의 젓가락질은 예의에 어긋난다.
- 나미다바시: 젓가락으로 집은 음식물의 국물이나 양념을 떨어뜨리는 젓가락질이다.
- 네부리바시: 젓가락을 빨거나 핥는 것이다.
- 다테바시: 밥 위에 젓가락을 세워서 꽂아 놓는 것이다.
- 마와시바시: 젓가락으로 밥이 담긴 그릇을 마구 휘젓는 것이다.
- 마요이바시: 젓가락으로 어떤 음식을 집을지 건드리며 망설이는 젓가락질이다.
- 모기바시: 젓가락에 붙은 음식을 입으로 떼어 내는 것이다.
- 사구리바시: 음식을 뒤적거리거나 형태를 망가뜨리는 젓가락질이다.
- 사시바시(쓰키바시): 음식을 찔러서 집는 젓가락질이다.
- 와타시바시: 젓가락을 밥이 담긴 그릇 위로 가로질러 올려 놓는 것이다.
- 요세바시: 젓가락으로 그릇을 자기 쪽으로 당기는 것이다.
2.2. 식사 습관 [편집]
메이지 유신 이전에 일본인들은 하루에 식사를 아침에 1번, 저녁에 1번으로 하루에 2번 하는 편이었으나 메이지 유신 이후에는 하루에 식사를 3번 하는 편이 되었다. 전통적으로 식사 시 출입구에서 가장 먼 안쪽 자리는 상석으로 취급되었으며, 1940년대까지 대체로 가장이나 연장자가 먼저 젓가락을 들고 나서 식사가 시작되었다. 식탁의 경우, 전통적으로 상류층은 큰 식탁을, 그 외에는 작은 각상을 사용했고, 메이지 유신 이후에는 많은 가정에서 큰 식탁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2.3. 외식 [편집]
3. 의복 문화 [편집]
야요이 시대에 왜국에서는 직물 짜기가 시작되었다. 아스카 시대에 쇼토쿠 태자가 수국의 영향을 받아 귀족의 의복 규칙을 정했고, 나라 시대에는 당국의 영향으로 의복 규칙이 노동용 의복, 의식용 의복, 조정 근무용 의복으로 변경되었다. 8세기까지 일본의 의복은 한반도의 의복과 비슷한 형태였다. 이후 점차 차이가 커졌는데, 한반도에서는 저고리, 바지 또는 치마를 입고 허리띠로 조여 입은 반면, 일본에서는 원피스 형태의 기모노, 하카마를 입고 허리띠를 착용했다. 헤이안 시대에 남성 귀족은 속대를, 여성 귀족은 주니히토에를 착용했다.
가마쿠라 시대에는 무사의 권위가 강해졌다. 이때 무사는 평상복으로 수의와 스이칸을 입었다. 여성의 경우, 예복으로 고소데와 하카마를 입었다. 아즈치모모야 시대에는 대담한 느낌의 옷과 장신구 착용이 장려되었다. 에도 시대에는 무사들이 예복으로 가미시모와 나가바카마를 입었고, 민간인들은 화려한 고소데를 입었다.
메이지 시대 일본의 의복은 본격적으로 유럽의 의복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남성 공무원은 정장을 입기 시작했고, 남학생들도 서양식 제복을 입기 시작했다. 여성은 여전히 기모노를 입었으나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배운 여성들이나 직장인 여성들이 평상복으로 유럽의 의복을 입기 시작했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유럽의 의복이 거의 모든 사람들의 평상복이 되었다.
가마쿠라 시대에는 무사의 권위가 강해졌다. 이때 무사는 평상복으로 수의와 스이칸을 입었다. 여성의 경우, 예복으로 고소데와 하카마를 입었다. 아즈치모모야 시대에는 대담한 느낌의 옷과 장신구 착용이 장려되었다. 에도 시대에는 무사들이 예복으로 가미시모와 나가바카마를 입었고, 민간인들은 화려한 고소데를 입었다.
메이지 시대 일본의 의복은 본격적으로 유럽의 의복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남성 공무원은 정장을 입기 시작했고, 남학생들도 서양식 제복을 입기 시작했다. 여성은 여전히 기모노를 입었으나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배운 여성들이나 직장인 여성들이 평상복으로 유럽의 의복을 입기 시작했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유럽의 의복이 거의 모든 사람들의 평상복이 되었다.
3.1. 결혼식 [편집]
3.2. 장례식 [편집]
4. 주거 문화 [편집]
일본의 전통적인 주택은 덥고 습한 여름에 맞는 개방적인 형태와 2~3층 구조가 주로 이루었다. 통풍에 유리하도록 창문이 많고 지붕이 높았는데, 추운 겨울에는 부적합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또한 지진에 대비하여 주택의 높이가 낮은 편이었고, 주로 목재로 지어는데, 방음이 잘 되지 않고 화재가 발생할 경우 피해의 우려가 크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리고 전통적인 주택은 장지를 통해 방과 방이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접객과 행사에 용이했다.
강설량이 많은 지역은 이중 출입문이 있고 현관에 눈을 털어내는 공간이 있다. 또한 지붕은 눈이 쌓이지 않도록 경사가 급한 형태이다. 갓쇼즈쿠리로 지어진 주택이 많으며, 덧문은 없다.[1] 반면, 여름에 덥고 습한 남부 지역은 덧문이 있고 창문이 크며 주택의 규모는 작은 편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개인의 생활이 본격적으로 중시되기 시작했고 개인 공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커졌다. 그래서 거실과 식사를 함께 하는 다이닝 키친을 갖춘 주택이 늘어났으며, 이러한 주택은 집 안의 구조가 확실히 구분되는 형태였다.
강설량이 많은 지역은 이중 출입문이 있고 현관에 눈을 털어내는 공간이 있다. 또한 지붕은 눈이 쌓이지 않도록 경사가 급한 형태이다. 갓쇼즈쿠리로 지어진 주택이 많으며, 덧문은 없다.[1] 반면, 여름에 덥고 습한 남부 지역은 덧문이 있고 창문이 크며 주택의 규모는 작은 편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개인의 생활이 본격적으로 중시되기 시작했고 개인 공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커졌다. 그래서 거실과 식사를 함께 하는 다이닝 키친을 갖춘 주택이 늘어났으며, 이러한 주택은 집 안의 구조가 확실히 구분되는 형태였다.
4.1. 내 집 마련 [편집]
4.2. 방 구하기 [편집]
일본에서 집세는 월세로 운영되며, 전세는 없다. 또한 집주인은 대개 다른 건물에 거주한다. 전세 보증금은 월세 1개월분 정도이며, 수리에 사용되는 돈은 제외된다. 그리고 처음 입주하면 사례금을 낸다. 외국인의 경우, 일본인 보증인이 요구되는 경우가 많다.
[1] 덧문이 있으면 결빙으로 인해 문이 열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