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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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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개혁]] [목차] == 개요 == '''갑오개혁'''은 1894년에 실행된 개혁이다. == 언어별 명칭 == ||<-2><tablealign=center><tablewidth=400> 언어별 명칭 || ||<width=25%> [[한국어]] ||<width=75%> 갑오개혁[* 한자 표기: 甲午改革] || || [[영어]] || Gabo Reform || == 배경 == 1894년에 [[동학 농민 운동]]이 발생하여 [[한국|조선]]은 [[청국]]에 파병을 요청했고, 톈진 조약에 의거하여 [[일본]]도 조선에 파병했다. 전주화약 체결 이후 조선은 철군을 요구했으나 일본은 동학 농민 운동을 수습하고 조선의 내정을 개혁한 후 철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은 일본의 군사 개입을 우려하여 교정청을 설치하여 개혁을 추진했으나 일본 국군이 [[경복궁]]을 점령했고, 김홍집 내각이 수립되었다. == 전개 == 1894년 7월 27일에 군국기무처가 설치되어 갑오개혁이 시작되었다. 개화파는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본떠 [[일본]]과의 의논을 통해 개혁을 진행하려 했고, [[흥선대원군]]과 대립했다. 김홍집은 동학 농민군을 적대했으며 [[청국]]의 개입에 찬성했고, 동학 농민군을 진압할 때 일본 국군의 철수를 반대했다. 동학 농민군은 협상을 제기했으나 조선 정부는 동학 농민군을 진압하고 개혁을 수행했다. [[일본]]은 [[청일 전쟁]]에서 승리한 후 내정에 직접적으로 관여했다. [[흥선대원군]]이 축출되고 군국기무처가 해체되었다. [[고종(이형)|고종]]은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홍범 14조를 반포했다. == 주체 == 갑오개혁은 개화파와 [[흥선대원군]]을 따르는 사람들의 협력으로 실행되었다. 유고적 입장의 전통적인 개혁론과 일본의 메이지 유신의 영향을 받은 문명개화론의 융합을 통해 주체적 개혁의 입장에서 유럽의 사상을 수용하려 했다. == 내용 == 갑오개혁은 과거제 및 신분제 폐지, 군주권과 정부권의 분리, 소학교 설치, 역참 제도 폐지, 재판소 설치, 조세 제도 개편, 중추원 도입, 화폐 개편, 행정구역 개편[* 8개 도가 폐지되었고 23개 부가 설치되었다. 동시에 [[서울특별시|한성]]은 한성부 산하의 행정구역이 되었다.] 등을 포함했다. == 문제점 == 갑오개혁은 개화파가 동학 농민군의 협상 제기를 묵살하고 이들을 진압했다는 점과 [[일본]]이 [[한국|조선]]을 침략할 명분을 제공했다는 문제점이 있다. 개혁은 일본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신식 화폐 발행 장정, 조일 잠정 합동 조규, 조일 공수 동맹 조약이 체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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