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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목차
1. 개요2. 언어별 명칭3. 금지

1. 개요 [편집]

소고기는 소로 만들어진 고기이다.

2. 언어별 명칭 [편집]

언어별 명칭
한국어
소고기
쇠고기
우육[1]
영어
beef

3. 금지 [편집]

3.1. 한국 [편집]

한반도에서 소는 농사를 돕는 동물로 여겨져 소고기를 먹는 것을 좋게 보지 않은 편이었다. 고려도경에 의하면, 고려에서는 대왕과 재상이 아니면 고기를 먹지 못한다는 내용이 있을 정도였다. 다만, 고려사의 최응 열전에 의하면, 태조는 병에 걸린 최응에게 자신이 직접 도살하여 얻지 않은 고기는 먹어도 해롭지 않다는 논리를 제시하며 고기를 권했다. 불교를 믿던 이규보 역시 소고기를 먹지 않으려 했으나 눈 앞의 소고기를 보고 결심이 무너졌다고 한다. 그리고 여몽 전쟁이 종전된 이후에는 몽골의 문화가 고려에 전파되면서 육식 문화가 고려에 확산되었다. 이후 홍건적의 난 이후 1362년에 금살도감이 설치되었다. 1389년에는 조준이 소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금살도감을 재가동하고 소 도축을 살인죄와 같은 수위의 죄로 논하는 것에 대해 상소를 올렸는데, 이 왕조가 정권을 장악한 후 우금령이 공식적으로 실행되었다.

14세기에 고려 서북계에는 거란족 및 여진족 일부가 거주하고 있었는데, 조선은 이들을 정착시키고 농업에 종사하도록 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15세기에 천민뿐 아니라 양민들도 도축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으며, 전문 도축업자인 거골장이 등장했다. 이에 따라 관청의 공식 허가를 거치지 않은 모든 사적인 도축인 사도가 불법으로 규정되었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남의 소를 절도하거나 도축할 경우 교형에 처해졌고, 사적 도축 시 곤장 100대에 맞았다. 대전후속록에 의하면 소를 도축한 사람은 곤장 100대에 맞고 전가사변 조치를 받았다. 또한 소고기를 사서 먹은 사람도 제서유위율로 처벌되었다. 다만, 저절로 죽은 소라면 먹어도 처벌받지 않았는데, 이러한 소에 한해 관청에서 허가 표식인 입안을 발급받은 후 세금을 납부함으로써 매매를 하는 것은 합법이었다. 이 점을 이용하여 멀쩡한 소의 다리를 일부러 부러뜨리거나 소가 병에 걸렸다고 핑계를 대고 도축하는 편법이 발생했다.

17세기에는 성균관 유생들의 음식을 공급하던 관노비 반인들이 도축에 관한 권리를 독점했다. 또한 소고기를 걸어 놓고 판매하는 헌방이 등장했다. 삼법사가 헌방으로부터 벌금 명목의 속전을 거두고 소에 대한 도축 및 판매를 묵인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관청이 도축과 소고기 공급에 직접 관여하기도 했다. 또한 김응두는 주점이 늘어나 안주로 쓰이는 소고기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여 사도가 많이 시행되고 있다는 내용의 상소를 올렸다. 소고기 소비의 증가가 기름, 땔감, 채소 등의 물가에도 영향을 미칠 정도였다. 이후 영조는 금주령을 해제한 후 정조가 통치하던 시기에 한성에 주점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리고 단오, 설날, 추석 등의 명절에는 일시적으로 단속 금패를 거두어 소에 대한 도축이 일시적으로 허용되었는데, 이 기간 동안 도축된 소는 2~3만 마리로 추정될 정도로 많았다. 또한 이한운은 전국의 소가 하루에 1000여 마리, 1년 동안 38만~39만 마리가 도축된다고 상소했고, 북학의에 의하면 하루에 500마리 정도, 1년 동안 18만~20만 마리의 소가 도축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1] 한자 표기: 牛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