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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반정(비교)

r11 vs r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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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정조(이성)|정조]]는 당송팔가문, 육경, 제자, 주자문 등을 모범으로 삼아 문품의 교정을 추구했다. 개인의 문학적 취향뿐 아니라 과거(科擧)의 답안과 같은 공적인 글쓰기 역시 통제했다. 1785년에 권일신, 이승훈, 정약용 등의 남인 정치인들이 김범우의 집에서 천주교 의식을 거행하다 적발되었다. 이후 대전통편, 무예도보통지, 병학통과 같은 국정 실용 서적이 간행되었다. 1791년에 [[전라도]]의 권상연과 윤지충이 조상의 신주를 불살라 사형에 처해졌다. 이후 사기영선, 육주약선, 주서백선 등이 편찬되어 관각문의 모범으로 취급되었다.
2020
2121진산 사건을 계기로 서학 문제가 남인 정치인들에 대한 정치적 공세로 이어졌다. 또한 정조는 서학을 경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서학, [[소품문]], 패관문체의 연관성을 제기하였다. 그렇게 문체반정을 통해 소품문을 즐긴 관료들에게도 책임을 물음으로써, 서학 문제를 둘러싼 비판의 방향과 범위가 재조정되었다.
22
23 * 김조순: 1787년에 평산냉연이라는 소설을 읽다가 발각되어 반성문을 작성했다.
24 * 남공철: 1792년에 패관문체 구절을 썼다가 직함이 박탈되고 자송문 작성을 지시받았다.
25 * 심상규: 1792년에 패관문체와 관련된 작품을 탐닉한 것으로 인해 반성문을 제출했다. 그러나 문장이 어색하다는 이유로 정조가 한글 작성 및 주해를 달게 하여 곤욕을 치렀다.
26 * 이상황: 1787년에 평산냉연이라는 소설을 읽다가 발각되어 반성문을 작성했다.
22== 처벌된 관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