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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 23 | == 처벌된 관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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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 24 | * 김조순: 1787년에 평산냉연이라는 소설을 읽다가 발각되어 반성문을 작성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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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 25 | * 남공철: 1792년에 패관문체 구절을 썼다가 직함이 박탈되고 자송문 작성을 지시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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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 * 박지원: 박지원이 작성한 열하일기를 정조는 법망을 빠져나간 거물이라고 비판했다. 그리고 정조는 열하일기의 죗값을 치를 아정한 글 한 편을 지어 올리면 과거를 거치지 않고 오를 수 있는 관직인 남행문임에 임명하겠다고 박지원에게 약속했다. 박지원은 정조에게 사죄하는 답서를 보냈지만 즉시 반성문을 지어 바치지는 않았다. 1797년에 면천군수에 임명되었을 때 이방익표류기를 제출했고, 1798년에는 실질적인 농업 개혁을 다룬 과농소초와 한민명전의를 바쳤다. 이를 읽은 정조는 박지원을 사면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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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 27 | * 심상규: 1792년에 패관문체와 관련된 작품을 탐닉한 것으로 인해 반성문을 제출했다. 그러나 문장이 어색하다는 이유로 정조가 한글 작성 및 주해를 달게 하여 곤욕을 치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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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 28 | * 이상황: 1787년에 평산냉연이라는 소설을 읽다가 발각되어 반성문을 작성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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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 29 | * 이옥: 1792년에 과거 답안에 소설체를 사용한 이유로 정거 및 사륙문 50수벌작 작성이라는 처벌을 받았다. 1795년에 응제 표문에 소품체를 사용하여 충군 조치되었고, 1796년에는 별시 초시 1등으로 합격했으나 책문 격식 미달로 최종 탈락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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